기나긴 대학원 생활을 지나 박사급이란 이름으로 연구생활을 한지도 10년이 넘었다.
문득 구글 학술검색에 검색해보니, 마지막으로 2021년 쓴 논문이 구글학술검색 36번째 저술 논문리스트에 올라와 있었다.
2018년 이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내 삶에 이렇게 많은 여유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오늘도 암센터 창가자리에 앉아 방사선치료를 기다리며 몇 자 적어본다.
#1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실력있고 친절한 박사쌤/포닥쌤
"포닥" 또는 "포스닥"(post-doctor)은 박사학위를 마친 연구자가 연구경력을 쌓기위해 연구를 업으로 하는 자리에서 일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연구경력(논문)이 필요하다는 것은 교수를 꿈꾼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포닥은 대학이나 국립연구소에서 뽑는다.
(대학도 연구비가 많은 교수님들이 포닥 월급을 줄 수 있으므로 돈이 없는 연구실은 포닥도 없다. 그건 국립연구소도 마찬가지다.)
https://me2.do/FfMPkFja
반대로 바로 취업을 할 경우, 포닥 과정은 필요없다.
사실, 내가 학위를 받은 연구실 박사 선후배들도 대부분 바로 기업이나 연구직 공무원, 민간기업으로 취직을 했기때문에 포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교수가 되고 싶기보다는 하고싶은 연구가 있어 박사졸업과 동시에 포닥을 시작했다.
그 당시 제약회사 임상실험 담당 연구원이 되고싶었으나, 임상실험 실무경험은 석사시절 2년으로는 부족했고,
박사시절에는 실험실에서 화학실험, 세포실험, 약대에서 동물실험을 했으므로, 임상실험분야의 제대로 된 경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박사졸업을 준비함과 동시에 포닥연구를 위한 proposal(연구계획서)을 미국에 냈고, 운이 좋게 USDA 기관과 한국대학이 공동연구하는 프로젝트에 포닥으로 덜컥 패스되었다.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진짜 바쁜 포닥생활을 했다.
(결국 좋은 임상실험 논문을 유럽학술지에 게재했고, 그것이 지금 경력의 가장 큰 기둥이다)
https://me2.do/FfMPkFja
앞서 언급한데로,
연구비가 많은 대학 또는 연구기관에 포닥이 있다.
연구비가 많다는 것은 해야할 연구가 많고, 실력있는 포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초보연구자들(대학원생들,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만나는 연구비가 많은 연구실의 실력있는 포닥/박사쌤들은 매우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석사, 박사신입들에게 친절히 연구에 대해 알려 줄 시간이 없다.
(이것은 경험으로 봤을 때, 매우 희박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혹시 왜 우리 포닥쌤은 친절하지 않는가에 대해 너무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없다.
반대로, 실력과 상관없이 그냥 연구실에 있는 포닥도 있긴 있다.
시간강사를 하면서, 그냥 학교에 가끔 나와서 연구실에 있거나, 상주하는 박사들이 있다.
내 경험 상 이들은 바빠서 친절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본인도 잘 모르기 때문에 친절할 수 없다.
사실 대부분의 포닥이 그러하다.
박사를 졸업했다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고, 박사들도 본인의 연구분야를 알 뿐이지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을 확신할 수 없으므로 누군가에게 조언하기도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연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확률적으로 친절하고 실력있는 박사급 연구자들(이미 취업을 했거나, 교수가 되었으므로)을 대학에서 만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그렇기때문에, 내가 사회에서 만난 많은 초보연구자들이 질문에 목말라 있었다.
친한 선배나 동료도 없고(있다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인 경우가 많음), 시간도 매우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런 기초적인 것을 교수님께 여쭤봐도 되나?"라는 질문을 품고 고민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친절한 잔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서 이 블로그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원을 진학했다면, 논문을 쓰기에 앞서 본인의 전공과 연구실에 대해 먼저 잘 파악했으면 한다.
그리고 본인 전공에 대한 최신자료들과 연구동향도 알고 있으면 좋겠다.
20년 전 연구초보자였던 나 자신에게,
지금 연구를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
친절한 포닥쌤/박사쌤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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