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병원으로 오는 차안에서 문득, 박사를 졸업하고 모교 행사에 초대받았던 날이 떠올랐다.
행사 당일, 대학강당에 도착해서 내가 학부시절 동경했던 이박사님이 나와 함께 행사에 초청되셨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순간, 여기 앉아있는 학생들 중 누군가가, 십수년 전 20대 초반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얘기를 듣고 진로의 방향을 정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도 햇살이 내리쬐는 암센터 창가에 앉아, 음악과 함께 방사선치료를 기다리며, 그 날 후배들의 질문에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답해 본다.
#2 이공계 대학원생이 되려는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지금도 그러하지만, 후배들이 모교를 졸업한 선배들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졸업한 후의 진로이다.
나를 포함해 행사에 초대된 4명은 필자(서울대박사졸업, 미국 포스닥), 변리사, 공무원, 대기업연구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나는 그 때에 박사를 막 졸업한 상태이므로, 답변해줄수 있는 것은 대학원입학과 생활에 대한 간단한 내용이 전부였다.
"대학원을 가려고하는데, 매우 어렵다고 들었다. 대학원준비는 어떻게하는 것이 좋은가?"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질문을 받는다면,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학생은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요?"
필자는 대학원이란 기본적으로 스스로 공부해야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기본적인 성향, 그 사람이 가진 학습하는 방식이 성공적인 대학원생활과 그 결과를 좌우한다.
결국, 이공계대학원은 연구자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곳이므로, 연구직이 되고싶거나 교수가 되고싶은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적호기심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모든 연구는 독창적이다.
근본적으로 동일한 연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때문에 연구는 나에게 맞는 가이드라인이 없다.
교과서도, 참고서도, 커리큘럼도 없다.
그렇기때문에 끝없이 다른 연구들을 파악하고, 내 연구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은 스스로 연구에 대한 지적호기심이 없다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고된 대학원생활을 함께 보낸 선후배들 중, 연구직으로 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대기업연구직이었으나, 이직을 한 사람들도 있다.
연구직이지만 그 일들을 매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로, 필자를 포함한 연구 부류의 사람들은 모여앉아 끝없이 본인 연구에 대해 떠든다.
쉬는 시간에도, 술자리에서도, 잠들기전에도, 지하철안에서도...
끝없이 연구방향과 실험결과들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니, 이공계대학원을 생각하는 학생들이나 대학원생이 있다면 본인의 성향을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혹시 주어진 공부만 해 온 사람은 아닌가?
스스로 본인의 주장을 담고 있는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는가?
선배나 교수님이 연구의 방향을 정해줄거라 생각하고 대학원에 가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그 연구만 하면 되지만, 그 안에서도 본인이 맡은 파트는 스스로 방향을 잡아 보고서와 논문을 작성해야하는 것이다. 의외로 논지있는 글을 써본 적이 없거나, 글 쓰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대학원생들이 많다.)
필자는 십여년간,
실험실에서 새로운 생리활성 물질을 찾아내어 추출하고, 항암효과가 가장 큰 물질을 찾고,
그 결과를 정리해서 논문으로 내고, 이런일들을 9 to 9(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으로 주 6일(토요일아침 랩미팅)로....
그래도 동료들이 있어 행복했고, 지금 구글학술검색에 36편의 논문이 검색되는 것이 가장 큰 자산이다.
이제 나에게 질문했던 학생에게 답변을 듣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것이 궁금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두해본적이 있는가?
학생은 그런 성향의 사람인가?
그렇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이공계 대학원에 가서 본인의 꿈을 이루기가 남들보다 어렵지는 않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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