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시절을 함께 보낸 동료들은 언제다시 만나도 어색함이 없다. 나에게 있어 대학원 시절을 함께보낸 동료들이 그러하다.
아마도 인간은 가장 힘들때 본성을 보여주고,
서로 그 모습을 보고난 후에도 만나고 싶다는 것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학원 시절에
누군가와 깊게 사귀기 어려운게 아닐까?
연구경력은 16년, 스타트업에 입사한 회사 경력은 1년 4개월... 사실, 회사에서는 연구경력을 활용할 일이 거의없다.
앱개발을 위한 로직을 만들었지만, 결국 개발은 내가 하는게 아니기때문에 한계가 있다. 연구자로써의 경력이나 연구스킬을 유지하는데에도 제한이 있다.
항상 바쁜데, 결과물은 없는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논문 리스트로 한해를 정리하곤 했는데, 올해 논문이 안나와서 그런건지, 뭔가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다이어리와 플래너를 쓰는건데... 작년까지는 잡념만 많아지는건 아닌지 걱정이 되곤했다. 역시 나는 연구실로 돌아가야하는가란 고민도 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도 어느샌가 동료들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팀장이지만, 회사생활 신입사원으로 팀원들에게 배우는 점이 많았다.
박사 졸업하고 책임급 연구원이 되고나서는 나에게 멘토가 필요한가? 의문이 드는 상황이 많았었다. 하지만 지난 연말, 여성과학자 워크숍에 참석했다가 내가 어릴 적 꿈꾸던, 바로 그 자리에 계신 분을 만났다.
(D제약 연구소장, 전무이사)
놀랍게도 박사 동문이고, 같은 건물에서 실험을 해서... 마주쳤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분도 카처럼 박사를 졸업하고 갑자기 기업으로 갔고, 지금의 나처럼... 여러 혼란 끝에 그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강연을 들었다.
"시니어 레벨은 일년에 한 줄의 커리어가 필요하고, 주니어 레벨은 한 장의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그 분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이제 주니어가 시니어를 선택하는 세상이 온다" 실무자가 높게 평가하지 않는 시니어는 필요없는 세상이 어고 있다.
직장생활 처음인 신입사원 팀장, 출근찍으라고 챙겨주고, 연차, 반차쓰라고 잔소리하고, 우영우같다고 놀리면서도 끝까지 반짝반짝 들어주고, 맨날 멋진 팀장이라고 칭찬해주고,
서울대 강의나간다고 나보다 더 좋아해주는
나보다 더 나를 믿어주는 우리팀원 정말 고맙다.
재택이 많은 나의 사무실 출근을 설레게 해주는 굿즈 선물들이 정말 너무 고맙다.
연구실에 십년 넘게 있으면서 묵혀둔 어마어마한 짐들을 정리하면서, 사무실 책상은 미니멀하게 유지하자고 다짐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잘 유지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미니멀한 책상에 카페나 팝업 굿즈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주는 우리팀원들 정말 고맙다.
연말에는 아직 우리 연구실에서 포닥중인 후배에게 연락이 온다. 내가 박사수료하고 멘탈이 수도없이 흔들리던 시절 술 친구였고,이런 책도 사주는 따뜻한 동료 중 한명이다.
실험실에서 풀타임으로 분석실험, 셀실험, 동물실험, 임상실험하고, 논문쓰고, 프로젝트 몇개 돌리면서 몇 년 살다보면,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이 온다.
실험은 많이 했는데, 논문은 쓸 시간도 없고,
바쁜데 남는건 없고, 돈도 없고, 이 고비를 넘기게 하는건 좋은 동료들이다. 나는 좋은 동료들이 많았다.
우리랩 단톡방엔 여전히 40명 이상이 활동 중이고 매년 스승의 날이나 송년회엔 20명 이상이 모인다. 못 오는 사람들도 외국에 있거나, 아가들 때문이다(물론 활성 중인 톡방에 교수님은 안계심).
오늘 그 중 한 명의 후배가 하버드로 포닥을 가면서 결혼도 하게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랩 안에서 결혼하는 두번째 커플이자, 내가 학부시절부터 지켜본 박사후배라서 기분이 이상하면서 참 좋았다.
나는 참 동료복이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사무실에 출근하면, 일본에서 온 선물이 한가득(*ૂ❛ัᴗ❛ั*ૂ) 올려져 있기도 하다.
이렇게 취향을 저격하는 선물이라니..
결국은 연구도 논문도.. 스타트업도 함께할 동료가 중요한 것 같다🙄 학교와 연구소를 벗어나 기업에 와서 PI가 되어 단독 연구를 하려니, 뭔가 기댈 곳이 없을 때도 있었다.
니도 ORCID에 연구 이력이 있긴 하지만, 투고사이트에서 affiliation을 넣을 때도, 어느 정도 연구이력이 있는 기관의 참여가 필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연구실로 돌아와서,
KIST에 있는 동료와 예전에 했던 공동연구 얘기를 하던 중, 이번 회사 연구얘기를 나누고,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일사천리로 회사대표님과 공동연구자의 동의가 떨어지고, KIST affiliation이 도착했다. 연구에 대해 깊은 논의도 하고,
데이터와 통계 관련 자문도 받고,
뭔가, 논문 투고의 부담감이 좀 줄어든 느낌이 든다.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어려움이 있을 때 기댈 수 있는 동료로 남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좀 더 배우고, 좋은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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